저는 얼마전 새벽예배시간에 참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말의 중요성에 대해 심각하게 연구하며 깊이 생각을 하고 있는터라 더 은혜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요즈음 저는 말을 아끼고 있는 중입니다 인간의 지체중에 제일 무섭고 살인적인 곳은 아마 입 인것 같습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야고보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장에서부터 5장까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여러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험과 유혹에서 승리하는 생활, 행함으로 연결되는 믿음의 생활, 혀를 지배하는 생활, 회개와 복종의 생활, 고난에서 승리하는 생활 등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제일 많은 분량으로 야고보 사도가 중요하게 다룬 내용은 바로 "성도의 언어 생활" 입니다. "말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에서 주님은 "나중에 너희들이 심판을 받을 때에 깜짝 놀랄 것이다!" 그랬습니다. 왜냐하면 말 때문입니다. 흔히 도적질하고, 때리고, 싸우고... 이러한 것만 죄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무익한 말에 대하여 심판하시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36-37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그랬습니다. 우리가 입술로 한 말이 하나님 앞에서 모두 심판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히브리어로 언어 '다발(dabar)이라고 하는데, 이 다발이라고 하는 것은 그 배후에 어떤 힘이나, 능력, 그리고 의미가 있다는 뜻입니다. 말에 힘이 있고, 파워가 있다는 것입니다.
말에 힘이 있기 때문에... 말을 잘 사용하면 능력이 되고 생명이 되지만, 말을 잘못 사용하면 거기에 아픔이 있고 상처가 있는 것입니다. 말에 뜻이 있고, 의미가 깊이 담겨져 있어서... 말이란 쉽게 잊혀지거나 없어지는게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몇 일씩 ... 아니, 몇 달... 어떤 사람은 평생을... 그 말에 상처로 인하여 아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 말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하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
오늘 본문은 세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9절의 말씀 입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1. 듣기는 속히 하라!
"듣기는 속히 하라..." 이 말은 "빨리 들어라!"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적극적인 경청의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잘 듣고자 하는 마음, 그 말씀을 듣고 순종 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듣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들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게 잘 안됩니다. 왜 남의 말을 듣지 못합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상대방의 말을 잘 듣지 못하는 원인을 살펴보면
첫째는,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사랑하면 듣게 되어 있습니다.
둘째로는, 상대방을 신뢰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뢰하면 듣게 되어 있어요.
세 번째는,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음이 앞서고 성격이 급해서 기다려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 말을 안 듣는다는 것은 나를 존경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고, 나를 기다려 주지도 않는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그 첫 번째는 바로 잘 듣는 것입니다. '듣기는 속히 하라' 그랬습니다.
누가 여러분에게 말을 하면 잘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2. 말하기는 더디 하라!
말하기는 더디 하며(19) "더디 하라는 말은 "신중하라" 는 것입니다. 성경에 우리의 입에서 쓴물과 단물이 찬송과 저주가 나온다고 했습니다.
말을 하는데 있어서 신중히 하는 자의 믿음이 온전하다고 하는 것이 오늘 성경의 가르침 입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은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할 말을 골라서 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즉 나의 말이 교회의 덕을 세우고, 약한 자를 칭찬하여 힘을 주고, 둘로 나누어진 사람을 하나로 다시 화목하게 하는 말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말에 "어떤 말을 하려고 하면 세 번 생각을 해보고 하라는 말" 도 있습니다.
(약3: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 작은 세치의 혀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특별히 기독교인들에 대한 일반인의 평가는 어떠합니까?
참 예수쟁이들은 말을 잘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달변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너무 말만 앞세운다. 행동은 없다.
거짓이 많다 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은 우리가 말만 잘한다고 하는 평가를 받아서는 안될 줄로 압니다.
우리는 어찌하든지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나누어주는 말을 많이 하시길 바랍니다.
3.성내기도 더디하라(19)
이 말은 우리 인간적인 혈기를 부리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혈기를 부림으로 성도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경우가 너무나 허다합니다. 기분이 상하고 속이 상하여 들러 엎어 버리고 싶은 그 순간에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온전한 믿음의 사람 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교회에서 자기의 혈기를 자랑하는 경우가 잇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이도 있습니다. '나 건들지 말라 나를 건들어 보아야 이익이 없을 것이야' 이것은 복음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혈기가 나는 그 순간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잡으려고 오는 말고의 귀를 칼로 잘랐습니다. 귀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시 귀를 붙여 주면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검을 다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진 자는 검으로 망하느니라"
"나는 아버지가 주신 잔을 내가 마셔야 하리라" 베드로는 주님을 잡으러 오는 사람, 말고를 보고 참지 못하여 칼을 들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검은 혈기의 상징입니다. 이 때 주님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이것을 참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 사람이 온전한 믿음의 사람 입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마다 거의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교회마다 각 분야에서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 또 특별히 확실하게 일을 하는 사람이 혈기가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 합니다.
그 사람은 자기의 공로 의식과 자기의 의가 강합니다. 그래서 남을 포용하지 못하고 자기의 열심의 기준, 자기의 확실한 삶의 철학으로 남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나는 이런데 왜 당신은 그 정도밖에 못하느냐...
우리 모두가 한번 말씀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언어생활은 어떠한가를 돌아보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나의 언어생활을 다시 한번 점검하면서 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