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글 > 언론보도내용
 
    
사모 내조가 교회와 목회자 살립니다(교회와신앙)
고복희 [kbh1557]   2011-09-18 오후 1:27:32 4204

"사모 내조가 교회와 목회자 살립니다"
사모기획③ / 인터뷰-동선교회 고복희 사모
2006년 10월 31일 (화) 00:00:00 박병득 pbdeuck@amennews.com

   
   ▲ 동선교회 고복희 사모
“과거의 모범적인 사모상은 남편인 목회자의 뒤에서 조용히 돕고, 교회에서 기도에 전념하는 사모였습니다. 즉 교회 일에 사모가 나서서는 안 된다는 시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변했습니다. 사모들의 전업사역이 목회에 활력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교회부흥에도 일조하면서 적극적인 사모를 원하고 있는 교회가 늘고 있습니다.”

동선교회 고복희 사모(박재열 목사)는 교회에서 상담실장과 영성집회를 담당하면서 교회사역에 적극 나서고 있다. ‘부흥을 이루는 교회!’ 목사와 사모에게 이보다 더 떨리는 말은 없을 것이다. 금식하며 철야하며,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눈물의 강을 이루는 수많은 날들이 그 간절함의 바로미터일 것이다. 오늘날 5천여 명의 성도들이 출석하는 동선교회의 비약적인 부흥 뒤에는 기도와 상담으로 함께 동역한 고 사모가 있었다.

교회의 부흥은 당연하다는 것을 ‘안 될 수 없는 교회부흥’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하며 전국을 누비며 역설해 온 대한예수교장로회 동선교회 박재열 목사는 그래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일이 가능했음은 박재열 목사 뒤에 든든한 기도의 후원자요, 사역의 동역자요, 가정의 지킴이로 내조했던 고복희 사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과 헌신으로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목회를 살리는 참 일꾼 고복희 사모를 만났다.

고 사모는 “교회는 구원선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원선 같은 교회는 오늘날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분명히 교회는 구원선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셨는데도 유람선 같은 모습으로 변질됐다는 것이 고 사모의 지적이다. 구원선 같은 교회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가장 큰 목표로 삼고 그 일을 위해 전념하는 교회다.

영혼을 건지는 일 때문에 동선교회는 바쁘고 고단하다. 선장대역인 목회자, 항해사, 기관장, 갑판장 같은 장로, 권사 등의 중진들이 영혼구원에 바쁘기 때문이다. 교회가 양적으로 커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얼마나 영혼을 건져 주님을 기쁘시게 하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물론 구원선 같은 교회도 친목과 놀이모임이 아주 없는 것이 아니다. 동선교회도 마찬가지다. 휴식을 취하긴 취하되 고기를 많이 잡은 후에 잠깐 휴식을 취하고 정비를 하고 그물을 깁느라고 놀고 쉬는 것일 뿐이다.

“구원선의 교인들에게는 마지막에 큰 영광과 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 성도는 구원선의 교인이 되려고 힘쓰게 되지요. 뿐만 아니라 영혼의 생명을 살리는 것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것임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선의 교회로 바꾸기만 하면 교회는 반드시 부흥됩니다.”

이렇듯 목회자의 아내로 구원선 되는 교회의 사모로 개척교회에 헌신하기를 7년. 성전에서 기도하던 고 사모에게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은사와 사명을 주셨다.

“저는 사모로서 한국적인 사모를 원했습니다. 조용한 사모요. 목사님을 남편이기 전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기억하고 순종하며 사모이기 전에 일등성도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개척 후 7년이 지난 어느 날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내조자로 잘 했다. 내조자이지만 1등 성도다’ 하시며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 후 체험신앙과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영성으로 인해 ‘이상해졌다’, ‘말이 많아졌다’는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의 외로움은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라 울기도 많이 울었지요···.”

고복희 사모는 짧은 말속에 자신이 걸어온 길이 어떠했는지를 모두 말했다. 그리고 많은 사모님들이 은사를 묻어두지 말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모로서 일하려고 하면 많은 장애물들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저는 이 장애물을 뛰어넘기 위해 더욱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사탄에게 지지 않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해야 하니까요. 낙심하면 안 되잖아요. 제가 마음껏 일할 수 있음은 하나님께 받은 사명, 성도를 향한 사랑, 눈물의 기도로 보낸 인고의 세월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작업하시게 하려면 생명 내어놓고 굶어 죽을 각오로 하면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미리 걱정부터 하고 내가 하려니까 문제지요”라고 말하는 고 사모는 “죽을 각오하니 이제는 생활 걱정 없는 것은 물론이고 남을 도울 수 있는 환경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또한 “능력 있는 목회자 부부는 떠도는 교인도 붙잡을 수 있고 정착도 많이 시킬 수 있다”면서 “사모는 남편을 내 남편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강조한다.

  
   ▲ 박재열 목사와 고복희 사모
동선교회는 뜨겁다. 많은 사람들이 동선교회가 전도로만 부흥한 줄 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뜨거운 기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 뜨거운 기도들이 기도 폭발로 이어졌고, 이것이 교회 부흥의 원인이 된 것이다. 물론 이 자리엔 사모가 늘 기도의 불쏘시개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고복희 사모를 인터뷰하며 기자는 고 사모의 독특한 4가지 사모관을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은 이미 밝힌 대로 ‘무릎사모’다. 은사보다 봉사보다 심방과 헌신보다 무릎을 먼저 꿇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 하시고,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응답하시며,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능력주시기 때문이다.

둘째는 ‘걸레사모’다. 1989년 11월 말 성전에서 기도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걸레가 될게요. 궂은 일, 땀 흘리는 일, 우는 일, 옷 버리는 일 도맡아 할게요.”

그래서 지금도 교회 궂은 일의 최일선에는 늘 고 사모가 있다.

셋째는 ‘방패사모’다. “교회에서 기도할 때 제 목소리가 제일 커요. 왜냐하면 화살을 혼자 다 맞으려고요. 다른 사람들 맘 놓고 기도하라고요.” 성도들이 마음 놓고 기도하며 봉사할 수 있도록 화살을 자청해 맞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등성도’다. “사모는 성령에 의지해서 진정한 내조자로 확실히 보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목회는 사모가 남편의 설교에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정신 차리고 아멘하며 준비된 삶을 살고 사모가 은혜 받는 자리에 있어야 하고 1등 성도가 돼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모는 목사님의 약점을 가장 잘 알고 있기에 은혜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고 사모는 “사모가 은혜 받지 못하면 졸음주식회사 회장님이 되고 맙니다”라며 웃음 짓는다.

고 사모는 1년에 한 번씩 하루를 정해 집에 있는 선물들을 모두 챙기고 경비도 일체 감당하며 중직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여 집사님들이 종일 주의 일하고 저녁에 집에 가서 남편 눈치 보는 것 보면 너무 안타까워요. 그들이 돈을 벌고 들어왔다면 그런 대접을 받겠어요? 이 성도들이 얼마나 귀하고 사랑스러운데요.”

기자가 이어 목사님에 대해 묻자 고 사모는 “우리 목사님은 열심이 특심이예요. 순수하고 꾸밈이 없으세요. 개척 초기의 초심을 지금까지 일관되게 유지하고 계시고요”라며 주저 없이 자랑한다. 이는 목사님에 대한 사랑과 신뢰의 표현이었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씀이 없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고복희 사모는 “사모는 하나님께 위로를 받아야 한다”며 “주님 때문에 웃을 수 있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목사님께 바보처럼 순종하세요.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목사님도 기뻐하시게 됩니다. 저는 이러다가 능력과 은사를 받았습니다. 기도하라 하면 예! 아멘! 하고, 전도하라 하면 예! 아멘! 하세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문제도 겁나지 않습니다”며 자신의 삶의 방식을 살포시 내놓았다. 고복희 사모는 현재 동선교회를 시무하는 남편 박재열 목사와 딸 성혜, 그리고 아들 지훈과 함께 다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고 사모는 처녀 때 부친이 술을 좋아하셔서 결혼 안하고 평생을 석가모니와 같이 살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다 28세 때 직장을 그만두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배우자를 위해 4가지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돈 없어도 좋아요, 술 안 먹고, 예수 잘 믿고, 부인 아껴주는 남자 만나게 해 주세요.” 그 기도제목대로 동갑내기인 청년 박재열을 만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고 사모에게 교회 출석을 시작한 해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신 것이다.

청년 박재열과 예수를 믿기 시작한 고복희는 생각과 이상이 하나님 안에서 동일하였고 결혼 후 사명이 뜨거웠던 남편은 낮에는 과외를 가르치고 밤에는 야간공부를 하는 신隙?길에 들어섰다. 그때 이 부부의 나이는 31세였다. 사명 앞에 환경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신학 4학년 때인 1982년 9월 16일 천호동에 교회를 개척했다. 그리고 기도를 심고 전도의 씨를 뿌리며 영혼 구원을 위한 구원선으로 교회가 든든히 자리 매김해 나갔다.

고 사모는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현재 사모살리기 운동을 초교파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남편 목사님의 목회에 큰 도움이 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사모살리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고 사모는 “사모는 시험 들어도 내색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다른 교회로 옮기지도 못하기 때문에 싫든 좋든 죽을 때까지 한 교회 한 목사님(남편)만을 섬겨야 하며 그분을 통해 주시는 말씀에 은혜를 받아야 한다”며 사모들의 현실을 그대로 내놓았다.

“마음 밭을 옥토로 가꾸지 못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고, 가정생활이나 교회생활이 즐겁지 못하면 어느 누구도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기 때문에 오로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므로 해결점을 찾고 무시로 성령 안에서 함께 기도하기 위하여 사모살리기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사모살리기운동은 지난 1990년도 봄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동선교회 구 예배당 유치부실에서 모여서 기도회를 가지면서 시작됐다. 그때 참석인원이 약 50명쯤 되었고 집회 때마다 뜨거운 성령의 불의 역사와 함께 회개를 통하여 은사를 체험하고 또 회복하므로 사명을 다시 찾게 되는 영성집회가 3년 정도 지속 되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10여 년 동안 기도하며 준비한 끝에 새 예배당건축을 완공한 후 2003년 4월 3일부터 다시 시작하여 지금까지 매주 목요일 많은 사모들이 집회에 참석해 영성을 회복하고 가정생활과 교회생활에 긍정적으로 참여하는 사모들이 될 것을 다짐하는 단체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고 사모는 ‘교회부흥’을 위한 능력세미나도 매 년 열고 있다. 고 사모는 “목사님들이 주최하시는 세미나는 거의 대부분 사모의 괴로운 심정을 아시긴 하지만 조금은 아쉬운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사모들의 고통과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문제점들을 순조롭게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확신에서 세미나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세미나를 통해 가정생활 교회생활 영적생활에 대해 깊이 파헤쳐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문제점들을 치료 받게 할 뿐만 아니라 은사와 능력이 살아나게 될 것이며, 은사를 활용할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되므로 사모님들이 새 힘을 얻어 기도하고 전도하여 교회가 부흥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른 집회나 세미나와는 달리 기도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기 때문에 주님과의 깊은 만남을 통하여 모든 문제가 해결 받는 세미나입니다.”

“사모님들을 진정 사랑합니다. 모든 사모님들이 능력있게 사명 감당하며 하루 하루를 하나님 앞에 올바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고복희 사모에게는 아픈 추억이 있다. “수년 전 사모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어요. 사모라는 같은 이름과 동질감 때문이었는지 쉽게 마음 문이 열리고 은혜도 많이 받았습니다. 재충전된 저의 모습은 다시금 사명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게 했지요. 그런데 6개월 후에 다시 참석해 보고는 실망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6개월 전에 봤던 사모님들 가운데 많은 사모님들이 다시 왔어요. 그런데 6개월 전에 하던 푸념을 똑같이 다시 늘어놓고 있는 거예요. 변한 게 없어요. 은혜 받았으면 실천에 옮겨야지요.”

고복희 사모는 대한신학교와 이대노인지도자전문교육 과정을 졸업하고, 목회자사모 살리기 운동본부본부장, 한국교회 살리기 운동본부 후원이사, 전국 목회자 사모 능력세미나 전임강사, 수원 경인지역 교회부흥을 위한 능력 세미나 강사, 한국교도소 교화위원 및 부흥집회 강사, 영혼사랑 능력집회 전임강사, 매주 금요철야부흥회 연합기도회 인도, 동선 경로대학 학장 및 강사, 주일학교 중, 고, 청장년 부흥성회 강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 사모는 사모들을 위한 복음성가 ‘사모의 길’을 작사하기도 했다.

(IP : 58.140.208.213)
  "끌면 밀고"개척교회사모수기 (생명샘 1984년7월호) (2004-12-21 오후 4:09:10)
  사모를 살리면 교회가 산다 (크리스챤타임스 인터뷰 2009.8.6) (2009-08-28 오후 6:00:34)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3     고복희 사모 뉴욕 사모 집회     고복희사모     2007.10.04     7114  
  12     [사모님,우리 사모님] 지원단체, 어떤 도움 주나(국민일보2013년3월8일)     관리자     2014.12.18     4157  
  11     박재열목사5행시(1996년 극동방송 새롭게하소서에 방송)     고복희     2011.08.16     4645  
  10     희생의 제물 되어(월간목회 2003년9월호)     관리자     2004.12.21     6385  
  9     피와 땀과 눈물의 열매 (교회신보 2001년6월16)     고복희사모     2004.12.21     6183  
  8     "끌면 밀고"개척교회사모수기 (생명샘 1984년7월호)     고복희사모     2004.12.21     6286  
      사모 내조가 교회와 목회자 살립니다(교회와신앙)     고복희     2011.09.18     4205  
  6     사모를 살리면 교회가 산다 (크리스챤타임스 인터뷰 2009.8.6)     관리자     2009.08.28     4828  
  5     "예수영생 보험 전파하라"(크리스챤연합신문 제116호)     고복희     2008.06.25     4441  
  4     사모 세미나를 다녀와서 (그리스도 복음신보 제91호)     고복희     2008.06.12     5517  
  3     목회자 사모가 울고 있다. (교회와 신앙 제52호)     고복희     2008.06.11     4193  
  2     뛰쳐나온 사모들에게영육의쉼터가 필요하다(교회신보,제511호)     고복희     2008.06.06     4163  
  1     "사랑과 사명으로 무장된 열정 사모" (목회자 사모신문)     관리자     2008.05.06     3617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