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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교회사모수기 "끌면 밀고" (생명샘 1984년7월호)
고복희사모 [master]   2004-12-21 오후 4:09:10 5094
   "끌면 밀고" 개척교회 사모수기 고복희사모
 
 개척은 쉽게 시작할 수 없는 일이지요. 누가 개척한다는 말을 들어도 나와는 관계없는 일처럼 생각했었고 개척 교회를 하는 친구의 여러 가지 어려운 실정을 눈으로 보아왔기 때문에 개척한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고 먼 훗날에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개척을 해서 이렇게 교회가 잘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니 꿈만 같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하던 일 다 접은 남편께서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부터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렸습니다. 1979년도 3월에 신학교에 입학하여 5월 첫 주부터 전도사직을 맡고 있었는데, 교회와 담임목사님께서 잘해주셨기 때문에 큰 어려움없이 지냈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목사님께서 췌장암으로 고생하시다가 그만 돌아가셨습니다. 알고보니 박재열전도사가 교회 후임자로 있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고 좋을 것 같다고 하시며, 유언을 녹음에 담아놓은 상태였습니다.
 
 사실 담임목사님께서 병환이 위중하셨기 때문에 일년동안 교회일을 전담했습니다. 사후 중진회의에서도 제 남편이 담임으로 결정되어 모든 일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30여년 되고 300여명모이는 든든한 교회였지만 ,교단이 다르고 공부를 계속 해야 하는 젊은 전도사로서 이일이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기도하다가 둘이서 조용히 의논한 끝에 그 교회를 떠나주는 것이 교회와 성도를 위한 길이라고 판단하여 아무런 대책도 없이 사표를 대고 말았습니다 
 
 이제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교회에서 얻어준 한 칸짜리방도 비워주어야 하는 무일푼의 가난뱅이 신세가 되었답니다. 3살 5살 남매 등 우리 4식구는 갈곳없고 의지할 곳 없는 너무나도 초라하고 구차한 생활이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3년 반 동안 정들었던 교회와 교우, 이웃을 등지고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곳을 찾아야 하겠기에 낙심하지 않고 기도만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므로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된 것처럼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여러 날 동안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교회가 없는 곳을 찾아다녔으나 서울 시내엔 마땅한 곳이 없었습니다.

 남편이 서울에 위치한 신학교 4학년생이라 학교 다니기 좀 불편해도 시골로 가야하겠다고 생각하며 마지막 발길을 옮기다가 좋은 자리를 허락하셨으니 천호동에 조그만 건물에 유아원이 운영되고 있는 문이 닫힌 교회였습니다. 
가 3천만원! 엄청난 액수였습니다. 걱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만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기적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전도사로 있었던 제기동 성동교회에서 개척자금으로 2백 50만원을 주겠다는 너무나도 큰 기쁜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3천만원을 깍고 깍아서 1,600만원에 계약,매입하게 된 것은 완전히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윽고 1982년 9월 16일 28평 조그만 건물에 동선교회라는 이름으로 창립예배를 드렸고 새벽예배 시간엔 눈물 뿌리는 시간이었습니다. 둘이서 쓸쓸할까봐 이웃교인을 한두 사람씩 보내주시는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해서 눈물이 앞을 가려 찬송가 곡조까지 틀릴때도 있었습니다. 주일 낮 예배 때도 친인척들 몇몇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등 초라하고 쓸쓸하였지만 힘차게 찬송부르며 기도하니까 채워주시기 시작하였습니다.

 남편전도사님과 저는 교대로 성전을 지키며 하나님께 매달렸고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서 열심히 뛰며 일을 하였습니다. 저는 사모라기보다 사찰이라 생각하고 모든 일을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하였습니다. 쌀이 없고 돈이 떨어져 수제비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때가 많았지만 항상 지켜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저는 결혼 후 지금까지 남편께 늘 순종의 자세로서 내조해왔습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웃을 사랑하고 도와주어야 하며 집에 오는 손님에겐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대접하고 거지도 외면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참 어려운 일은 눈치 없이 시도 때도 없이 마구 달라는 거지손님들인데 돈을 맡겨놓은것처럼 손을 내밉니다. 몇 백 원이 아니라 몇 천원을 요구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하루에 50원 주는 것도 손이 떨리는데도 백 원짜리 드리면 기분나빠합니다. 교회를 마치 자기들의 은행으로 착각하고 있나봅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담임목회자를 찾으며 반가운 소식이라도 아니면 중대한 의논이라도 있는 척 합니다. 사실은 좀 많은돈을 요구하는 사람이지요. 이럴 때 지혜롭게 처리하는 일이 참으로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비서 역할을 잘해서 괜한 시간 허비하지 않게 해드리는 것이 내조자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부와 설교준비, 심방 외에는 거의 신경을 안 쓰시도록 편안하게 해 드리며 어렵고 괴로운 일이 있을지라도 바가지는 긁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담임목회자에 대한 야당적 입장에서 냉철하게 비판해야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닌 내조자로서 내일을 위해 미력하나마 애쓰고 있습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픔을 느낄 때나 육신의 피곤함을 느낄 때 다정스런 위로의 한 마디에 그만 마음이 스르르 녹아버리는 하나님의 종의 내조자로서 뒤에서 밀기만 하렵니다.
어려운 교회에서 이자도 많이 나가는데 적은 액수지만 1982년 10월 달부터 작은교회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개척한지 한 달된 교회에서 선교한다니까 돈이 남아돌아가느냐고 의문들이 많았습니다. 한두 달 지나는 동안에 성도 수도 늘어 30명가량 되었고 교회 비품도 하나씩 장만하게 되었습니다. 또 재미있는 일은 평일 날에 먹을 만한 것이 있으면 아껴서 주일 낮 예배 후 진수성찬에 웃음꽃 피며 식사를 함께 나누는 일은 너무나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귀한 음식 두었다가 전도사님드리라고 성도들은 야단들이었지만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내조를 잘못하는 것인지 잘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우리가족과 온 성도가 한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어느덧 가을도 지나고 겨울이 왔습니다.
12월 중순엔 큰 기적이 나타나 교회에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20년 동안 귀가 안 들리던 중년부인이 수요예배 후 남편 박재열전도사님과
성도들이 그를 위해 합심 기도하던 중 귀가 열렸습니다. 늦은 밤이었는데도 집에 갈 생각도 하지 않고 너무나 기뻐서 서로 얼싸안고 울었습니다. 그 분의 이름은 최병순님 딸아이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귀만 열린 것이 아니라 온 몸이 아파 늘 누워만 있었던 그 여인의 몸이 완전히 나았던것이지요.이 광경을 눈으로 보고 믿음이 희미했던 분들도 하나님이 확실히 살아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해가 바뀌고 1983년의 해를 맞아서 남녀집사 6명을 세우게 되었고 우리전도사님과 교육전도사님과 성도들은 똘똘 뭉쳐 한 덩어리가 되어 끌면서 밀면서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니 교회는 날로 부흥이 되어갔고 저는 항상 바쁜 사람이 되었습니다. 잠 한번 편히 못 잤고 사찰의 일을 해야 했으며 늘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자세로 살았지만 피곤하고 어려워도 주님만 바라보면 어느새 기쁨이 찾아오곤 했습니다. 성도들의 괴로움은 교역자의 괴로움이었고 성도들의 즐거움은 교역자의 즐거움입니다.
 
 또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찾아서 경로잔치도 하며 대화의 문을 열기도 하였습니다. 주일 낮 예배인원 50명 선이 좀 어려웠는데, 100명 선으로 부흥되는 일은 더더욱 어려웠습니다. 날마다 일꾼을 좀 보내달라고 기도하니 여러 방면의 일꾼을 보내주셔서 84년 초반에 집사 16명을 다시 세웠고, 청년들도 많아져서 2월 하순부터 약 4주 동안 교회건물을 새롭게 단장하였습니다. 피와 땀과 기도를 통해 두드러지게 성장해감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특히 저희 교회는 집사님들이 순종을 잘하시고 청년회가 자랑스럽습니다. 학교 공부 열심히 하면서도 주일학교 교사직과 성가대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작년 7월에 강도사고시에 합격하신 남편은 드디어 목사임직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온성도들의 축하를 받으며 감격스러운 날을 보냈습니다. 저도 얼마나 기뻤는지 덩실 덩실 춤을 추고 싶었습니다. 사실인즉 목사가 아닌 전도사로서 개척하고 설교하고 또 심방하고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더러는 축도권이 없다느니 축복권이 없다느니 하면서 전도사라고 뒤에서 무시하고 훼방하는 이웃교회 직분자도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일로인해 크나큰 시집살이 속에서 고독을 씹어야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묵묵히 십자가 고난을 바라보면서 나의 모든 것 주의 것이기에 하나님께 맡기렵니다. 기도할 때 응답주시고 주의일할 때 능력주시는 나의 하나님, 우리 하나님은 동선제단을 기도와 능력과 사랑의 제단으로 만드셨습니다. 새벽예배 30%, 금요철야예배 40%, 말씀들을 때 순종의 자세로 기도할 때 확신을 가지고 지역 복음화와 농어촌 복음화, 이 나라 이민족을 위해서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6월 총동원 주일엔 장년 150명 목표달성하게 되어 2부예배로 드리며 더욱 소망이 넘치는 가운데 여름수양회로 기도원에 가서 40명의 남전도 여전도 청년회가 열심히 기도해서 은혜 충만히 받았습니다. 질적 양적 부흥은 자연스럽게 되어가고 기쁨과 감사 속에 청사진을 그려보며 기도합니다.

“이제 한 달 앞둔 9월 16일 설립 2주년을 통해 올해 목표인 장년 200명을 보내주소서. 현재 아주 조그맣게 실시하고 있는 작은교회를 더 많이 돕게 해 주소서. 올해 2교회에서 내년에 4교회를 돕게 하소서. 5년 후에는 예산의 50%를 선교비로 쓰게 하소서. 이를 위해 무엇보다 말씀으로, 성령으로, 충만케 하소서. 그러므로 주님 오시는 날 주 앞에 서는 날 참 교회로 참 목자로 서게 하소서...” 

                   1982년9월16일개척,1984년 생명샘7월호 월간지에 게제된 글 
                                                      
                                       동선교회 박재열전도사 아내 고복희사모
(IP : 122.37.1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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